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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향한 존재(Sein-zum-Tode)-철학적 계절, 12

관리자2023.12.05 11:13조회 수 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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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학수 교수

 

 철학적 계절, 12월

 

 

 

-배학수 (경성대 철학과 교수)-

 

 

한 해가 저물어 가는 12월은 

기후적 의미뿐 아니라 철학적 의미에서도 독특한 달이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낮은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는 12월의 물리적 특성은 

명상과 독서를 위한 자연스러운 환경을 조성한다. 

그리고 12월은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해가 시작하는 변환기이다. 

시간의 전환점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실존적 평가를 내리며 

일반적 삶의 조건을 성찰한다.

 

12월은 인간 유한성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다. 

연말은 종말로 나아가는 삶의 진행을 반영하기에 

실존적 질문을 불가피하게 촉발한다. 

12월에 사람들은 지나간 한 해를 되돌아보고 다가올 한 해를 기대하면서, 

마르틴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한 존재(Sein-zum-Tode)’ 개념과 유사한 

과정에 참여한다. 

 

이 개념은 

인간의 삶이 진행하다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진정한 삶은 늘 죽음과 마주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보통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분리하여 

삶이 끝나면 죽음이 온다고 생각하는 데 반해, 

하이데거는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삶 즉 존재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죽음이 인간 존재의 필연적 조건이므로, 죽음은 존재의 가능성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단순한 삶과 존재를 구별한다.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도 인간은 살기는 살겠지만, 

그것은 생활일 뿐 존재는 아니다.

 

 

     겨울·연말이라는 자연적 시간적 조건

     사색과 성찰 위한 완벽한 무대 제공

     삶의 가치와 중요성 다시 돌아볼 기회

 

 

죽음이 존재의 가능성이라는 점을 

1952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살다’에서도 우리는 발견한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시청에서 거의 30년을 근속한 공무원이다. 

그는 반복적 일상 속에서 중요한 개인적인 성취나 기쁨도 전혀 없이 

단조롭고 성취감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와타나베의 삶에 대해 영화의 내레이션은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시간만 때우고 있을 뿐이니까. 

그는 산 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살아있다고 할 수 없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단순한 생활을 넘어서는 것이다. 

와타나베의 삶은 말기 암 진단 때문에 커다란 전환을 이루게 된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성찰의 상태 즉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한 존재’로 자신을 몰아간다. 

위암 진단은 유한성을 일깨우는 실존적 경고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와타나베의 경우처럼 말기 암 진단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실존적 순간은 

매년 찾아온다. 

그때는 12월이다. 

한 해가 끝나는 12월에 

우리는 종말과 마주 서서 삶의 가치와 목적에 의문을 제기한다.

 

12월의 성찰 행위는 

삶의 의미를 찾는 보편적인 탐색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빅토르 프랑클의 ‘로고테라피’는 인간의 주된 행동 동력이 

프로이트가 제안한 쾌락이나 아들러가 주장한 권력이 아니라, 

우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 

인간은 인생에서 쾌락이나 권력이 아니라 

의미를 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이다. 

 

 

12월은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탐색하는 활동에 독특한 기회를 제공한다. 

연말은 사람들이 당면한 일상의 재촉에서 벗어나 넓은 맥락에서 

자신의 삶을 평가하고,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년에 자신의 행동을 이러한 가치에 어떻게 맞출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는 시기이다.

 

12월의 성찰적인 성격은 

종종 개인적인 변화와 결심을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한다. 

새해 결심은 이러한 현상에 대한 증거이다. 

개인이 바람직하지 않은 특성이나 

행동을 바꾸거나 삶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결심하는 행태는 

본질적으로 철학적 활동이다. 

이런 활동은 철학자만 하는 것은 아니다. 

12월이 되면 누구나 실존적 성찰에 참여한다.

 

독서와 사색뿐 아니라 여행도 철학적 활동이다. 

2007년 숀 펜 감독의 영화 ‘황야 속으로’는 

여행을 통한 철학적 사색의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1990년 미국의 명문 에모리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는 

자신의 가치를 탐색하기 위해 혼자서 정처 없이 여행을 떠난다. 

도중에 그는 여러 사람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목격하고, 

자신의 이상을 확인하며,

그들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가치관을 변화시킨다. 

 

 

결국 그는 행복이란 완전한 자유라고 확신하고 

문명으로 오염되지 않은 알래스카의 황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처음에 그는 산과 강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를 향유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외로움이 증가하면서

가족과 여행 중에 만난 소중한 사람들이 자꾸 머리에 떠오른다. 

몇 주 후 행복은 타인과 공유해야 진짜가 된다는 점을 깨닫고 

그는 알래스카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한다.

 

12월은 철학적 계절이다. 

겨울의 자연적 조건과 

연말의 독특한 위치는 사색을 위한 완벽한 무대를 마련한다. 

이러한 성찰적 성격은 12월을 단순한 시간적 표시에서 

철학적 중요성의 시기로 끌어올린다.

 

 

1959년 경북 의성 출생

▲서울대 철학과 학사, 석사, 박사 과정 졸업,

박사논문 '전통적 존재론의 한 해체 작업으로서의

하이데거의 칸트 해석'(1992)

▲경성대 교수 임용(1986년)

▲미국 컬럼비아대 방문연구(1994)

▲미국 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 방문연구(2002년) 

 

 


  •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 「전통적 존재론의 한 해체 작업으로서의 하이데거의 칸트해석」(1992)을 쓴 후,

대학 시절 민속 가면극회의 활동 경험과 하이데거의 예술 사상을 토대로

무용철학 논문 2편, 「무용작품의 세계와 진리」(2000), 「동작 속의 진리-하이데거와 무용」(2002)을

철학 학술지에 발표하면서, 2001년부터

<부산일보>와 예술잡지 『예술부산』에 무용 칼럼을 다수 기고했다.

저서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입문 강의』 읽기-의식과 무의식의 변증법』(2020),

『퇴근길 글쓰기 수업-누구나 쉽게 따라 하는 글쓰기 비법』(2019),

『프로이트의 문명변증법-에로스와 타나토스의 투쟁』(2018),

『누구나 쉽게 따라 하는 글쓰기 교실』(2011)이 있다.

현재 경성대학교 교수이다.

 

출처 :  [배학수 경성대 철학과 교수 ⓒ 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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