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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분노의 재료 역학

마임2015.02.16 18:01조회 수 11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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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재료 역학


 


‘욱하는 한국인, 자제력 잃은 한국, 외국인이 체험한 '한국의 도로 위 분노(Road Rage)'


 


얼마 전 신문에서 본 기사의 제목이다. 난폭하고 화를 잘 내는 운전 문화에 대한 기사였다. 도로 위의 성냄과 폭력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사정은 심각하다. 어느 TV 프로에서 길거리 폭력을 방비해 자동차 트렁크에 비치해둔 일반인들의 무기(? )를 소개한 적이 있다. 어느 사람은 야구 배트를 트렁크에 갖고 다니고 어떤 이는 골프채를 넣어 두고 있었다. 좀 예외인 것 같았으나 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이 사자를 잡을 때 쓰인다는 나무 몽둥이도 소개되었다. 사실상 길거리에는 작은 일에도 화를 내며 폭력을 행사하는 맹수 같은 운전자들이 우글거리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범죄분석을 하는 대검찰청의 보고에 의하면 ‘화가 난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 우발적 살인이 전체 살인사건의 47%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끔찍한 사건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분노가 우리에게 주는 파괴력은 엄청나다. 사람이 분노할 때의 지능지수는 돌고래와 같은 80 정도의 수준이 된다는 말이 있다. 대체로 분노는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사실상 분노한 상태에서는 그 손익을 계산할 지능 조차도 상실하기 마련이다. 내 경험상 분노는 실수 제조기인 셈이다.


 


분노에 관한 문제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야말로 분노에 의한 뼈저린 상실의 경험을 해본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30대에 일시적인 화를 참지 못하여 가깝게 지내던 친구와 싸운 적이 있다. 돈 관계로 얽힌 일이었는데 내가 참지 못하고 화를 냄으로 인해 돈 잃고 친구도 잃고 말았다. 참지 못했던 한 순간의 분노가 나의 인생을 어리석고 황량한 길로 안내한 것이다. 이 일은 오랫동안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프로이트는 분노를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진 일종의 악의 미끼’라고 했다. 미끼라는 것은 원하는 대상을 속여 포획하기 위한 위장된 먹이이다. 그러나 분노의 덫에 걸린 가장 큰 포획물은 화를 내는 당사자이다. 다시 말해서 분노의 첫 번째 제물은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알렉산더 포우프(Alexander Pope) 는 ‘노한다는 것은 남의 잘못을 우리 자신에게 복수하는 일’이라고 했다.


많은 정신의학자, 심리학자들이 분노를 자제하고 조율하는 방법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그 지식이 내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이 없었다. 언제나 닥쳐온 현실 앞에서 이성이 사태를 판단하기보다는 감정(Emotion)이 먼저 시국의 주도권을 잡기 때문이다. 눈앞에 제기된 ‘사건’은 과거에 잠재해 있던 같은 냄새가 배어나는 나의 기억 속으로 순식간에 연결되어 ‘사건의 귀결’을 예측하고 만다. 부정적인 결말을 예상하는 것은 신기할 정도로 신속하다. 남을 의심할 때의 마음 상태와 비슷하다. 분노는 비슷한 과거 속의 경험을 확인한 후에 되몰아치는 좌절된 감정의 반향이다. 눈앞의 상황이 과거처럼 자신에게 불리하게 재현될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판단의 순간은 너무나 빨라서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 이성의 고삐를 손에 쥐기도 전에 감정이 날뛰기 시작한다.


- 분노는 절망의 감정에서, 감정은 과거의 기억에서, 과거의 기억은 상처의 아픔이 주는 두려움에서, 그러므로 분노는 두려운 상처의 과거가 있는 감정의 뚜껑을 건드릴 때 절망과 함께 터져 나온다. – 졸작, 아픔이 머물러 영글은 열매에서.


 


분노는 상처의 둥우리 안에서 배회한다. 상처가 분노의 근거지인 셈이다. 상처가 있는 한 언제나 분노는 불꽃처럼 타오른다. 상처는 마음속의 벌집과도 같다. 분노는 상처가 만든 벌집 속에 기생한다. 그래서 분노의 자기방어(Self defence)는 이기적이며 배타적이고 공격적이다. 위선도 불사한다. 많은 경우에 비굴하게도 분노는 그 대상을 구별한다.


 


분노는 걱정과 불안한 마음에서 돌풍처럼 일어나기도 한다. 캐나다의 행복한 은퇴 설계자 어니 젤리스키의 말에 의하면 우리들의 걱정거리는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며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란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고 마지막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믿을 수 없지만, 대부분의 분노는 쓸데없는 걱정에서 시작한다.


 


잘 알려진 소크라테스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친한 친구가 소크라테스의 집을 방문했는데 무슨 일로 화가 난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계속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아내의 분노를 애써 무시하고 태연하게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커다란 물통을 들고 거실에 들어오더니 소크라테스의 머리에 물을 쏟아버렸다. 순식간에 봉변을 당한 소크라테스는 수건으로 천천히 물을 닦아내며 친구에게 말했다.


 “여보게, 너무 놀라지 말게. 천둥이 친 후에는 반드시 소나기가 내리는 법이라네..


불편한 현실을 포용하는 그의 인품이 은은하게 빛나는 대목이다. 마음이 성숙하고 넉넉한 남자와 산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자신이 진정 행복한 여자였다는 사실을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몰랐을 확이 크다. 알려진 대로 아내 크산티페가 화를 참지 못하는 성품으로만 살았다면, 그녀는 소크라테스라는 진주를 즐기거나 누리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분노에 마음을 앗겨 자신의 손에 쥔 것이 돌인지 보석인지 분간할 능력이 없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일찍이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 아래 쓰인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남을 가르치면서도 먼저 자기의 구원을 이룩한 소크라테스야말로 진정한 멋쟁이 철학자라고 믿어진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읽어 보면 그가 소크라테스를 끝까지 경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비극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 '못생긴 배불뚝이'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 물론 세기를 뛰어넘는 악의는 없었겠지만. 그러나 니체는 분노를 다스리는 인격적 기량에서는 소크라테스 보다 몇 수 아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증명할 만한 그럴듯한 일화가 있다.


자신의 친구 파울 레에게 가버린 연인 루 살로메가 돌아오지 않자 니체는 질투와 분노에 휩싸였다. 루에게 버림받은 니체는 마음의 평정을 잃고 말았다. 그는 루에게 편지를 썼다.


"나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파멸이다. 만일 당신이 나를 버린다면, 당신의 문란한 생활을 세상에 폭로하겠소.


하지만 루는 니체의 협박에 넘어가지도, 그에게 돌아가지도 않았다. 니체는 분노했다. 그 직후에 니체가 쓰기 시작한 글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이 책에서 니체는 '여자의 최량은 기껏해야 암소다.' 라고 했는데 이것이 루 살로메를 가리킨 말이라고도 한다. 그 이야기대로라면, 분노는 위대한 천재도 간단하게 지능지수가 두 자릿수인 지적장애인으로 만든다는 결론에 이른다.


분노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유기하는 쪽에 가깝다. 가장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사거리 한복판에서 이성의 핸들을 놓아 버리게 작용하는 것이 분노의 실체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소크라테스처럼 남의 분노까지 안아주는 아량과 넉넉한 마음이 보기 좋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따뜻한 가슴을 갖은 사람에게 점점 매료되어 갔다. 사랑의 참모습은 관계 속의 갈등을 넘어 마음을 사로잡는다. 내가 온유한 성품이 지닌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깨닫지 못했더라면 여전히 눈뜨고 봐주기 힘든 사람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분노와 상처와 불행은 이웃 사촌이라기 보다 진한 피를 나눈 형제들에 가깝다. 그들은 서로를 물고 인과응보가 맴도는 악순환의 늪으로 끌고 들어간다. 나도 무지막지한 그들에게 당한 피해자의 한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결국, 그 끈적한 늪에서 나를 건져준 것은 의지가 아니라 가치관의 선택이라고 해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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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한번 읽고는 감히 댓글을 못 달겠네요

    담에 여유를 가지고 정독한 뒤 댓글 올리겠습니다..

    전공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어쨋든 다독에 감탄을 보냅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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