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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정
- 중앙대 교육학과 졸업
- 2000년 도미
- 둘루스 거주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거룩한 일과

keyjohn2022.06.09 11:41조회 수 37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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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진열대 냉면을 보면 오장동이 생각난다.

냉면 사발 육수까지 바닥 날 무렵,

옆 자리 수육에 쏠린 내 눈을 핀잔하던 젊었던 아내.

쉽게 끊기지 않는 면의 질김으로 우리가 위기를 넘기고

지금껏 이어진 걸까?


얼린 칼국수를 보면 명동교자가 생각난다.

마늘향 작열하는 겉저리를 먹으며

식사 후 구경 갈 공연장 옆사람의 후각을 염려하던 기억.

칼국수의 덤덤함을 화들짝 하게 만들어 준 마늘 즙이

지금껏 내 혈관 속에 스파이처럼 숨어 있어

타이레놀 만으로 족한 건강을 간직할 수 있었을까?


족발집을 지나노라면 장충동이 생각난다.

원조 아닌 집이 원조일지 모른다는 수상한 생각을 하게 하는,

할머니는 좀 처럼 찾기 어려웠던 할머니 족발집들.

식후 들른 태극당에서

누구의 소개로 만나 헤어진,

이름도 아스라한 누군가와의 추억.

족발집 할머니의 부재처럼

그녀와의 추억도 빈집처럼 남았다.


호두과자를 보면 기차 여행을 마친 

사람들의 고단함이 봉지에 매달려 있고,

구겨진 옷과 헝클어진 뒤통수 쯤은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 생각으로 빈 사이다 병처럼 

쉬 잊혀졌던 추억.


트로트 메들리를 들으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향해 돌진하는 무리들 사이로

호떡이나 핫바를 들고 명랑을 질질 흘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명랑으로 다시 사람과 빌딩과 대결을 준비하는

고속도로 휴게소는 거리의 성찬이다.


먹어야 하는 필연이 번거로운,

그 번거로움으로 연명하는 오늘도 

거룩 거룩 거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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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그러니 애틀랜타 별곡(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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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 온통 쩝쩝쩝!

    먹는 것에 관한한 기억력이 대단히

    좋습니다그려.

    가만히 참선하는 사람 군침 흘리게

    하는군요

    제목 '거룩한 일과'라 해서 진기한 어떤 

    일과인가 잔뜩 호기심이 발동 했는데

    비유가 너무 비약했나라는 생각도 들고 

    속았다는 생각도 쬐끔은 ---

    즐감하고 침 고이게 해서 감사합니다.

    늘 건필, 강녕하시기 바랍니다^*^ 

  • 이한기님께
    keyjohn글쓴이
    2022.6.9 13:12 댓글추천 0비추천 0

    요즘 말로 낚시질 당하신 기분인가요? ㅎ

    '먹어야 하는 필연'에 '거룩한' 이란 형용사를 붙이는 것이 

    저에겐 그리 무리한 어법이 아니었는  데 . . .


    육십 여년 살다 보니

    반복되는 먹거리도 권태스럽네요.

    한편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호강에 겨운 투정 같고..


    편안한 하루 되시길...


  • 십 여전전 누군가로 부터 호두과자를 받았습니다. 경주에있는 호두과자 원조의 가족이라 하더군요

    '호떡이나 핫바를 들고 명랑을 질질 흘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핫바를 찾아보니 어묵이군요.

    근데 (흘리는) 명랑의 뜻은 아직도 감감합니다.

    기쁨이 차고 넘친다는 뜻인가요?

  • 강창오님께
    keyjohn글쓴이
    2022.6.9 15:04 댓글추천 0비추천 0

    아 천안 호두라기 보다 경주 호두가 원조군요?

    어묵을 기름에 튀겨 소스를 발라 먹는 것을 핫바라고 하더군요.

    기름에 튀긴 건 어지간 하면 입에는 달라 붙더라구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식 사먹는 사람들. . .

    대부분은 즐겁고 쾌활해 보여서,

    창오님 추측이 빙고!!!


    너무나 편리하고 먹거리 지천인 한국 고속도로 휴게소 

    그립습니다.

  •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마트의 진열대에서도 시상이 실타래 처럼 마구 쏟아지니......

    기계화된 냉동의 식품에서도 아스라한 추억이 오버랲으로 우리 총무님을 멋진 시인으로

    이렇게 글 주시니 넘 감사, 감사!!

    저도 덕분에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난순님께
    keyjohn글쓴이
    2022.6.11 05:56 댓글추천 0비추천 0

    ''존경''이란 말의 적절한 상대를 찾지 못하고 육십이 넘었네요.

    아들의 경우, 생애 첫 '존경'의 상대가 애비일 진 데,

    지어미와 사남매를 두고 기꺼이 세상을 등져 버린 애비를 '존경'은 커녕 기억조차 없으니. . .

    어쩌면 첫 '존경'의 결핍이 지병으로 자리잡은 경우인 듯 합니다.


    그 뜻을 어렴풋이 알면서 부터 한번도 그 누구도 존경하지 않았던 오만( 혹은 결정장애)함이

    누군가의 나를 향한 '존경'이란 말에 수치심이 폭발하네요.

     넝마를 벗지 못하고 그 위에 정갈한 옷을 입은 듯 거북하고 스멀거리는 기분입니다.


    한편, 설란님이 제 글에 얹어 준 '존경'이란 말은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라

    누군가의 낯선 글에 잠깐의 놀라움을 담고 있는 표현 쯤으로 받아 들이니 맘에 납덩이가 내려가고 돌덩이가 올라오네요.ㅎㅎ

    저의 투정이나 정갈하지 못한 일상을 

    무조건적으로 받아주고 씻겨주는 누이 같은 댓글에 감사 또 감사!!!

  • keyjohn님께
      식사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천천히 드시던 모습이 각 지역의 특산물을 드시면서 과거를 생각하시는 그 모습이 이입되어 저도 고향이 그립습니다.   
  • 지금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납니다.  수학 여행 후 인천으로 돌아올 때 차창가에서 파시던 호두과자, 맛있는 호두과자의 추억,  경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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