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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정
- 중앙대 교육학과 졸업
- 2000년 도미
- 둘루스 거주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우물안 갑(甲)질

keyjohn2015.07.21 11:58조회 수 7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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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이 화두가 된 요즈음이다.
관계를 맺는 경우, 결제를 해야 하는 이후 재화의  출처가 되는 개인이나 법인이 차지하는 위치가 주로 갑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같은 소시민들은 메스컴에 오르내리는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갑을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중에는 정서적인 갑을 관계도 있어서 금전적인 관계 못지않게 강한 압박으로 상대를 옭아메거나 회복하는데 세월이 소요되는 상처를 주는  경우도 적지 않아 보인다.
큰아이가 대여섯살 무렵이던가?
대학 친구들과 가족동반으로 남한산성 백숙회식이 예약되어 있었다
전날 유치원 운동회를 하고 몸이 천근만근이었던지(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배려섞인 추측) 딸아이는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한 아이 때문인지 아내도 외출을 기꺼워하지 않았고 둘은 집에 남겠다고 했다.
공금으로 참석하는 아이들 선물도 많이 준비했고 , 돌아도는 길에 가족사진도 촬영하려고 했던 설레이던 마음이 싸늘해지며 내 시선과 말도 덩달아 시퍼런 날이 섰다.
아빠가 업고 가겠다고도 하고, 오는 길에 백화점에서  아이들이 열광하던 케릭터 가방도 사주겠다고 하며 외출을 종용했다.
아이는 점점 입을 내밀며 침묵으로 거절의사를 표했고,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고는 있지만 어린 딸의 고단함에 더 신경이 쓰이는 아내는 간단한 짐가방을 내려 놓았다.
기분이 급속히 다운된 나도 일행에게 전화를 해 아이가 아프다며 실제보다 과장된 핑계를 대고 드러누웠다.
TV도 시큰둥하고 신문도 심드렁해져서 뒤척이다가 비몽사몽을 헤메고 있는데, 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니 딸아이가 집앞에서 놀다가 자전거에 부딧혀 이마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지혈을 하고 상처 크기에 따라 병원으로 가서 처치를 해야 하는것이 순서였으리라.
그러나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딸아이를 후려친 것이었다.
당시의  내가 행한 ‘후려치다’의 의미는 ‘다소 적개심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육체적인 공격을 가하는 행동’쯤으로 정의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자지러 지는 아이에게 “피곤하다는 얘가 집에 있지 왜 기어나와 가지고. . .”와 같은 날선 소리를 훈계삼아 곁들였던 같다.
그 후 아이는 두고 두고 이날의 에피소드를 되풀이 해서 말했고, 이후 내 앞에서 어떤 결정을 할 때에는 내 눈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날 아빠에게  ‘후려침’을 당한  이유는 자신의 부주의로 자전거에 부딪혀 서가 아니라, 남한 산성에 가지 않은 자신에 대한 화풀이였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그날 사건이후 아이는 부쩍 착한 아이가 되었다.
적어도 아빠의 결정에 동의하거나 순종하는 측면에서는 . . .
자신보다 힘이 세고 뼈가 굵으며 소리도 쩌렁쩌렁한 남자를 화나게하면, 그것이  어느 순간 자신에게 육체적 고통이나 학대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딸의 나에 대한 순종과 동의의  성격을 눈치 챈 후 나역시 아이의 그러한 행동들이 전혀 달갑거나 고맙지 않았다. 아니 딸아이의 무력한 동의와 패배주의 적인 순종에  극단적인 슬픔을 느꼈다.
나로 인해 날개도 다치고 비에 젖어 둥지에 오르지도 못하고 일행에 뒤쳐진 작은 새를 보는 듯한 격한 자책에 한동안 시달리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후 나의 생활태도는 다소 바뀌었다.
어느 새 스물을 넘긴 아이가 지나치게 스키니한 진을 입고 나가도,  아내와 과하게 언쟁을하는 경우에도, 친구들과 어울려 먼여행을 가도 몇 마디의 염려섞인 인사로 긴 잔소리를 대신 한다.
설령, 스키니진을 입고 자제력없는 젊은 남자들에게 시덥지 않은 농락을 당한다 해도, 엄마에게 대드는 가정교육 부실한 요즘 것들 이라는 지탄을 받는다 해도 나의 무력앞에 처참하게 나뒹굴던 아이를 보던 또 다른 나를 지켜보는 것보다는 견딜만 할 것 같다면 무력한 갑의 직무유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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