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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정
- 중앙대 교육학과 졸업
- 2000년 도미
- 둘루스 거주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노스탤지어

keyjohn2017.04.29 11:05조회 수 3595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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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언제였던가?
수염이 거뭇해지는게 치부처럼 느껴져 
목욕탕에도 가지않고,
어딘가에 잃어버린 딸을 찾고 있을
부자 할아버지의 연락을 기대하며 살던 때니
열두 셋은 되어겠지.

형은 숙제를 핑계로 친구집에 갔고
엄마는 금단이네 마실을 가셨지

비가 와 일찍 목청을 푸는 모찌 장사가 골목을 지나자
옆집 개는 서툰 화음을 넣었고

이른 저녁식사에 일찍 찾아 온 허기에
부엌을 빙빙돌아도 먹거리를 찾을 수 없어,
쌀 한주먹 주머니에 넣고 우산을 챙겨 
엄마 마중을 나섰다.

금단이네 골목을 들어서니
구름색 벽돌에 둘러쌓인
창문에서
노르스름한 전구 불빛이 새어 나오고

불빛에 섞여
금실처럼 새어나온 웃음소리가
내 가슴위에 조끼를 짜놓고 갔다.

비님 오신다고 서둘러 나오던 엄마는
우산을 받아들며
꼴마리에서 이미 식어버린 쑥 버무리를 꺼내 건네주시며
보이지도 않는 검불을 훅하고 떼어냈다.

내 아이들은 자라 집은 비고 
더 이상 따스한 불빛도 창문을 
밝히지 않는다.
부자 할아버지는 어디에도 없어
던 것처럼

엄마는 이역만리에서
고사리처럼 굽은 허리로
박물관 처럼 변해버린 집을
지키고,

나는 먹거리를 위해
종종거리며
간간히 그리움과 추억으로
오늘을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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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없다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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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임시인님 

    정말 예술은 집을 떠나지 않고 하는 여행이군요.

    제가 과거에 한번도 만난적 없는 동갑내기 임시인님의 과거속에 함께 서있는 느낌!!!

    때론 외래어가 한국어보다 더 감정을 몰입시키곤 하죠.

    나의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이실 임시인님의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는 치매가 조금씩 진행중입니다.

    그래서 매일 짧은 통화로 어제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그렇게라도 나는 어머니와 함께 이 세상에 있고 싶네요.

    멋진 시. 감사!!

  • keyjohn글쓴이
    2017.4.30 08:03 댓글추천 0비추천 0

    삼라만상이 시간 앞에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섭리를 알지만

    나날이 쇠잔해 가는 부모님의 모습은 안타까움 자체네요.

    어머니의 차도도 빌어 드리고

    그녀를 돌보는 분께도 격려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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