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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정
- 중앙대 교육학과 졸업
- 2000년 도미
- 둘루스 거주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캔쿤 기행

keyjohn2017.01.19 17:14조회 수 6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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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 넘으니

물건도 식물도 쉽게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사흘간 집을 비울생각으로

거실등을 켜고 시큐리티 등도 켜고 돌아서니


마당의 조각상에 손길이 가고

우체통에도 눈길이 가며

매실나무는 애뚯하기까지 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게이트 앞에서 네 식구가 모여

사흘동안 눈 흘기는 일 없이 지내기를 다짐하며,

혹시 그런 사람이 있으면

'어글리' 라고 비난하고

cool하기로 약속했다.

 

내 비행기표 좌석 D를 보며

"역시 난 Dandy" 했더니

"Dandruff 많아서"라고 아들이 받아친다.


코발트 눈빛에 은발을 한 아줌마 승무원이

나눠준 멕시코 입국 심사용지를 작성하는 아들을 보며

"저렇게 열심히 펜을 굴리는 거 22년만에 처음본다"하고

'Dandruff'에 대한 복수를 해 주었다.


캔쿤 공항밖은 호객행위를 하는 아미고들로 인산인해였다.

예약한 밴을 타고 공항을 빠져 나오는데

검은 머리에 짧은 목을 한 아미가가 눈인사를 한다.


All inclusive 호텔은 체크인 부터 먹거리 풍년이다.

치즈케익에 칵테일을 마시며

비키니를 두른 백안의 미인들을 둘러보는데

짐풀러 가자며 아내가 허리띠를 잡아끈다


내일저녁 프렌치 디너 식당을 예약하고

저녁 부페를 먹는데

애틀랜타 공항부터 앞서거니 뒷서거니 주위를 멤돌던 노부부가

대각선 테이블에서 아는 체를 한다 .


흑인 밀집지역에서 일과를 보내다가

백인일색인 공간에 오니

내가 베케이션을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이 언뜻 들며,

내 의식 어딘가에 자리한 소심한 인종주의가

입가에 붙은 밥알처럼 부끄러웠다.


아침 카리브해는 파도가 거칠었다.

라이프 가드가 빨강 깃발을 해변에 꼽고 돌아서는데

앞서 걷는 대머리 신사의 머리를 박차고 내게 온

카리브해 아침 햇빛이

내 눈에 아싸하며 윙크를 한다.


적도에 가까워 자외선이 강하다는

호텔 스텝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비치 벤치에 부른 배를 깔고 누우니

"아-고고"소리가 절로 나온다.


지척에 있는 바에서 가져 온 칵테일의 취기에

몸을 맡기고 누우니

끊입멊는 아미고들의 행상행렬이 단잠을 깨운다.

왕골느낌의 비치 백, 형형색색 테두리의 선글래스,

심지어 머리를 땋아주는 사람들까지

삶의 전쟁터를 활보했다.


흑갈색으로 변한 그들의 팔 다리를 보니

따가운 적도 햇살 아래서 치열한

이들의 고단한 일상이 전해져

짠했다.


프렌치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며

에피타이져, 셀러드 스프를 아내는 왼쪽

나는 오른쪽 것을 주문했더니

아이들이 꺽꺽거리며 웃었다.


병아리 눈물같은 양이지만

매인 디쉬까지 먹어치워 수북해진

배를 감싸안고 멕시코 민속공연장으로

갔다.


꼭끼는 바지에 원색의 테두리가 근사한 둥근챙의 모자를 쓴

밴드에 맞춰

탭댄스를 추는 민속공연은 두박자 아니면 네박자였다.


이들도 피압박의 역사도 있었고 넉넉한 살림살이도 아닌데

경쾌한 음악들로 채워진 공연을

보면서 낙천적인 민족성이라고 속단했다.


귀향의 설레임과 아쉬움이 뒤섞이는

여행의 마지막 날은 맘이 분주했지만,

아내의 무거운 가방도 몰라라 앞서가는 야속한 아이,

오며 가며 비행기 창가 자리를 독차지한 아이에게

복화술로 '어글리'를 두번 외쳤다.


일상으로 돌아 와 도매상의 아미고들을 보니

검은 머리에 짦은 다리로 해변을 누비던 아미고들이

불현듯 바늘처럼 가슴 언저리 찌르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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