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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김소운의 ‘특급품’을 읽고

마임2015.09.14 08:32조회 수 298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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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운의 ‘특급품’을 읽고

 

“인생이 바둑판만도 못하다고 해서야 될 말인가.                    

 

김소운의 특급품을 읽어 내려가다 마지막 이 한마디가 나의 가슴을 때렸다. 바둑판만도 못한 인생이라는 말이 마치 나를 앞에 놓고 확성기를 튼 것처럼 내 귀에 메아리쳤다.

-

어느 거리에서 친구의 부인 한 분을 만났다. 그 부군은 사변(事變)의 희생자로 납북된 채 지금까지도 생사를 모른다. 거리에서 만난 그 부인, 만삭(滿朔)까지는 아니라도 남의 눈에 띌 정도로 배가 부른 그분과 찬 한 잔을 나누면서, "선생님도 저를 경멸하시지요. 못된 년이라고……." 하고 고개를 숙이는 그 부인 앞에서 내가 한 이야기가 바로 이 비자목 바둑판의 예화(例話)이다. - 본문 중에서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내 시작의 얼마 큼은 어려운 환경으로 힘들었고, 얼마 큼은 갈 곳을 몰라 인생을 헤맸으며, 얼마 큼은 자신의 저지른 잘못으로 고난 속에 살아야 했다. 그중에서도 나의 결정적 인생의 패착은 가장 중요한 곳에 꼭 놓아야 할 돌을 놓지 못한 일이었다. 난전의 어려움이 있었다지만 꼭 놔야 할 곳을 놓쳐 버렸다. 정석을 밟지 않고 악수를 둔 것이다. 내 인생은 망쳐버린 한 판의 대국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아는 바대로 ‘특급품’은 바둑두기의 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균열이 생겼던 바둑판의 회생과 인간성 회복에 관한 수필이다.                                                                                                                                                                    

‘비자의 생명은 유연성이란 특질에 있다. 한번 균열이 생겼다가 제힘으로 도로 유착, 결합했다는 것은 그 유연성이란 특질을 실지로 증명해 보인, 이를테면 졸업 증서이다. 하마터면 목침같이 될 뻔했던 불구 병신이, 그 치명적인 시련을 이겨내면 되레 한 급()이 올라 특급품이 되어 버린다. 재미가 깨를 볶는 이야기다. ( - 본문 중에서)

 

최근에 나는 인터넷을 통해 이 글을 읽으며 40여 년 전의 가물 한 기억 속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명인’을 떠올렸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명인’에도 바둑판에 관한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어렴풋이, 아다미(열해) 14곳의 장소를 옮겨 가며 벌어졌던 명인 슈사이와 기다니 9단의 대국 모습들이 기억 속에 되살아난다. 가와바타는 세고에 9단과 절친한 친구이다. 가와바타가 이 명장면을 마이니치에 연재할 수 있었던 것이 세고에와의 인연 때문이었다는 설화도 있다. 이 관전기가 한편의 아름다운 소설 ‘명인’으로 태어난다.

 

연하고 탄력이 있는 반들반들한 비자목 바둑판을 가운데 놓고 김소운과 가와바타가 마주 앉아 있다. 세월의 안개 같은 아련함이 두 사람이 마주앉은 바둑판을 감돌고 있다. 두 사람에게서  은은히 가라 앉은 긴장감과 청아한 정기가 배어 나온다. 순수한 삶의 기운일까?                                                                                                                

 김소운이 침묵을 깨고 바둑판에 돌을 놓는다.                                                                                                                    

“ 어디서나 과실을 범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을 매양 꽁무니에 달고 다니는 것이, 그것이 인간이죠.         

 

 “탁!                                                                                                                                                       

 

“말하거나 행동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 보며 겸손히 장고 할수 있다면 인간은 과실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겁니다.        

 

 “탁!                                                                                                                                                        

가와바타가 맞은편에 응수한다.

 

환상을 느낄만큼  두사람은 원숙한 인생의 경륜으로 바둑판에 가깝게 얽혀 있다.                                                                                  

 

실제로 두 사람이 바둑판앞에서 바둑돌을 만지작 거리며 한 판 둘 뻔 했던 일화가 있다.  김소운이  가와바타의 집에 갔다가 바둑판을 발견하고 그에게 대국을 제안했었고 가와바타는 ", 연락 드리지요." 하고 승락했다. 8, 9급정도 였던 김소운이 나중에 가와바타가 ‘명인’ 관전기를 쓸 만큼 아마추어 정상급 수준임을 알게되어 두 사람의 대국이 이루지진 않았지만, 후에 두 사람은‘특급품’과 ‘명인’이란 글로 문학의 바둑판 위에 각각의 걸출한 초석을 놓았다.                                                                                                                                                              

바둑판에서, ‘특급품’은 인간의 성적인 과실을 심오한 인간성 회복의 철학적인 삶으로 그려냈고 ‘명인’은 바둑 사에 남는 명인 관전기를 마이니치에 64회를 연재하며 문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바둑기의 신문연재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바둑판을 둘러싼 처절한 인간 정신의 싸움을 표출했다는 사실이다.

 

‘애정 윤리의 일탈(逸脫), 애정의 불규칙 동사, 애정이 저지른 과실로 해서 뉘우침과 쓰라림의 십자가를 일생토록 짊어지고 가려는 이가 내 아는 범위로도 한둘이 아니다. (중략)                  백 번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 하나의 여백을 남겨 두고 싶다. 과실을 범하고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이가 있다 하여 그것을 탓하고 나무랄 자 누구인가? 물론 여기도 확연히 나누어져야 할 두 가지 구별이 있다. 제 과실을 제 스스로 미봉(彌縫)해 가면서 후안무치(厚顔無恥)하게 목숨을 누리는 자와 과실의 생채기에 피를 흘리면서 뉘우침의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이와―. 전자를 두고는 문제삼을 것이 없다. 후자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 - 본문 중에서)

 

 

나는 ‘특급품’에서 말하는 애정의 오욕 속에 성적인 과실을 저지른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 내가 잘못한 수많은 일들의 ‘경중’을 따져 볼 때 나는 큰 죄인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나의 과거는 많은 과실과 과실이 후회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나의 마음판도 회생하지 못할 정도로 갈라져 갔다. 나의 일생은 실패한 인생이라고 볼 수 있었다. 좀 감상적인 표현이지만 내 마음에 ‘뉘우침과 쓰라림의 십자가를 일생토록 짊어지고 가려는 이가’ 나 자신이며, ‘ 제 과실을 제 스스로 미봉(彌縫)해 가면서 후안 무치(厚顔無恥)하게 목숨을 누리는 자’가 나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꿋꿋이 난관을 제치고 성공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 사람들은 ‘목침같이 될 뻔했던 불구’의 인생을 반추할 필요도, ‘과실의 생채기에 피를 흘리면서 뉘우침의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이와’ 함께 공감할 이유가 없을 수 있다.                                              

 

수필 ‘특급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실패와 좌절의 아픔을 안고 있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희망의 반향음이다. 절망의 진흙 속에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용기의 탄력이다. 인생을 포기하고 돌을 던지려 하는 마지막에 다시 한번 진지한 장고를 유도해 주는 기사회생의 격려장이다.  

 

‘과실은 예찬할 것이 아니요, 장려할 노릇도 못 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과실이 인생의 '올 마이너스'일 까닭도 없다. 과실로 해서 더 커 가고 깊어 가는 인격이 있다. 과실로 해서 더 정화(淨化)되는 굳세어지는 사랑이 있다. 생활이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어느 과실에도 적용된다는 것은 아니다. 제 과실, 제 상처를 제힘으로 다스릴 수 있는 '비자반'의 탄력― 그 탄력만이 과실을 효용 한다. ( - 본문 중에서)

 

‘특급품’은 나에게 용기를 주고 좌절에서 일으켜 다시 대국장 앞으로 나아가도록 등을 밀어준다. 혹시 있을지 모를 패배의 두려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아직 인생의 돌을 던질 때가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인생이 바둑판보다 못해서야’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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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댁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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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독후감이 과하지 않고

    너무 훈계풍으로 흐르지도 않고

    담담한게 님의 글이 주는 매력으로 여겨집니다.


    때로는 열마디 장식보다

    한마디의 절절한 단상이 훨 감흥을 주는 경험을 가지고 있답니다.



    "나는 아직 인생의 돌을 던질 때가 아님을 ..."

    이 대목이 압권이네요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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